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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김윤길) 비파괴 인생이야기-3 <비파괴학원에 등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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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체험담
등록일2016-03-21 13:02:08
작성자게시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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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김윤길) 비파괴 인생이야기-3 <비파괴학원에 등록하다>

 

요즘도 비파괴학원에서 NDT를 선전할 때 그럴 듯하게 포장하지만 지금부터 22년 전 나에게도 현재와 똑같은 방식으로 선전하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산업계의 의사 비파괴검사원” 이말 한마디에 누구나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 아무튼 이 NDT라는 것이 홍보하기에는 그 어떤 직종보다도 안성맞춤인 것이다 나도 그 사람 중에 한사람이었고 똑같은 생각으로 풍운의 꿈을 품고 시골에서 광주로 올라 왔으니까.

 

그래 내가 산업계의 의사가 되는 거야!

뭔가 모를 멋진 인생이 될 것 같아!

이게 바로 22년 전 나의 마음가짐이자 목표였다 그러나 비파괴전문업체에 취직하여 시간이 흘러보니 모두가 거짓이고 꽝! 이었다 아니 빛 좋은 개살구였다 그러한 패배감과 속았다는 생각을 오랜 기간 하였지만 그러한 나의 선택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악물고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비파괴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학원에서 사기 문구였다는 “산업계의 의사 비파괴검사원”이라는 허무맹랑한 광고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대로 실현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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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산업계의 의사”란 말에 혹해서 학원에 등록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지금처럼 한파와 추위가 몰아치는 한겨울에 나는 1차로 학원비3개월 치 12만 원 정도와 1개월 하숙비 8만원 그리고 이불 한 채를 보따리에 싸들고 광주로 올라왔다

 

학원에 가보니 수강생이 많았다 그때가 우리나라 비파괴학원1호이자 첫1호 신입생이기도 하였다 비파괴학원생만 약 130여명 정도가 시작한 것 같다. 촌놈이 대학도 아니고 비파괴학원을 다니기 위해 광주로 유학을 온 샘이다

 

아무튼 그 때 열정은 대단했다 학원 강의는 오전, 오후, 저녁 이렇게 1일 3회 같은 내용으로 강의가 있었기에 오전강의를 듣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저녁 강의 때 또 수강하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하루 2회의 강의를 들었으며 2번째 달부터는 용돈과 하숙비를 마련하기위해 석간신문인 광주일보 신문배달을 하였는데 한 달에 그때 받는 봉급이 3만 원 정도 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내가 일해서 번 돈이었다. 그리고 그 후 신문배달로 돈이 되지 않자 가정집 LPG가스점검 및 판촉 일을 하였고 그 후로는 불법복사가요테이프, 수세미 등 오갖 잡다한 것들을 가방에 넣고 밤에 호프집과 낮에는 시골의 가정집에 판매를 하러다니는 보따리 장사도 해보았다 그런 생활 속에서 비파괴학원공부 만큼은 강의를2번 듣고 집에 와서 복습하고 해서 그날 배운 것은 100% 이해를 하고 넘어 갔었다

 

그때 학원 다닐 때 마음가짐은 인생의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으며 RT기능사 자격증을 목표로 오로지 살아왔으며 그때 심정은 RT기능사 자격증을 따면 의사 면허증을 따는 것 마냥 세상을 다 얻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비파괴공부를 학원을 통하여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