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길세상보기

<체험-4>북한에서 생활 (4)-부제 : 우리의 한심한 남북 문제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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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체험담
등록일2016-03-21 14:46:00
작성자게시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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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4>북한에서  생활 (4)



부제 : 우리의 한심한 남북 문제를 바라보며


<<이 글은 제가 2000년 5월 30일~6월 19일까지 20일 동안 북한에서 경수로 건설 사업중 비파괴검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체험한 것을 회상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나는 이곳에서의 나의 본격적인 주 임무인 비파괴검사를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일과 연관되는 것은 발전소 주계약자인 한국전력과 국내의 여러 기업이 컨소시엄으로 되어 있는 합동시공단, 그리고 시공 업체로 구성되어 있다. 합동시공단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동아건설, 등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질적인 건설 업무를 하는 곳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곳 북한의 깊숙한 곳에서 첫날 밤을 무사히 지내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한 후 어제 같이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이곳에서 생활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은 이곳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과 가지 말아야 할 장소 등 상세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사고들을 곁들여 가며 생동감 있게 교육을 받았다.

그 교육중 가장 기억해야 할 내용은 북한 주민이나 간부 등과 만났을 때 북한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얘기나 사상과 이념에 관한 얘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아주 민감한 사항이고 잘못 얘기했다간 큰 다툼이 생기기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사람은 자존심이 엄청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없다고 무시하거나 하면 그들은 상상외로 과민 반응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나는 교육 내용을 머릿속에 새기며 드디어 함께 일하는 시공업체와 함께 이곳 주거지역에서 8km정도 떨어진 발전소 건설부지로 향하였다.

여기에서 주 이동수단은 거의가 다 국내에서 가져온 4륜구동형 지프형 차를 이용하였다. 이 8km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로 우리 기술진이 확장하여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었으며 그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나는 선덕비행장에서 이곳 금호 지구까지 들어오는 과정에서 5시간을 이동하면서 왔지만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는 도로는 처음 보았다. 이 말끔하고 깨끗한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게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도로 옆으로는 나즈막한 소나무가 있는 작은 산등성 숲이 있고 그 옆으로는 훤히 트인 바닷가 해변을 끼고 도로가 나 있어서 잠시라도 생각을 접으면 동해안의 도로를 타고 주말의 휴가 길을 떠나 드라이브 하는 그런 경치를 느낄 수 있었다.

도로에서 10m 떨어진 길가에 북한 주민이 사는 곳으로 보이는 집 몇 채가 있고 더 멀리에는 큰 동네가 보였다. 그리고 도로 중간 중간에 일정한 구간을 나누어 북한 군복을 입은 2~3명이 한 조로 짜여서 초소에서 소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서 발전소 건설 부지에 들어섰다. 뿌연 황색 흙먼지 속에 넓은 부지가 내 시야를 차지하고 눈길을 멈추게 했다.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기초 작업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삭막함 느낌마저 들었다.

듬성 듬성 있는 조립식 건물과 현장 사무실 그리고 일렬로 잘 정돈된 전봇대가 황무지 벌판의 이정표 역할을 할 뿐이었다. 나는 이곳 벌판을 지나면서 덜컹대는 출렁임을 몸소 느끼면서 4륜구동차가 이곳에 많은 이유를 옆사람에게 묻지 않고도 알아 차릴 수 있었다.

황색 흙먼지를 가르며 도착한 곳은 우리 팀이 일을 하게 될 컨테이너 현장 사무실이었다.

이곳은 벌판 깊숙한 곳에 위치하여 앞으로 발전소에 전기를 공급하게 될 자체 동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곳이었다. 다른 공사에 비해서 상당히 빠른 공사 진척을 보이고 있었으며 건물과 설비들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 팀은 여기 발전소에 사용될 연료 탱크를 제작하는 것이고 나는 이 연료탱크 제작중 용접부에 비파괴검사를 적용하여 결함을 찾아내어 더욱 안전하고 완벽한 품질을 보증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 팀 외에도 전붓대를 새우고 전선을 연결하는 기술자와 발전소 기계를 조립하는 기술자,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기술자등 100여명이 있고 북한 기술자 30명이 함께 섞여 일을 하는 곳이었다.

북한 기술자는 우리와 구분이 갈 수 있도록 청색 작업복을 착용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옷으로 구별할 수 있었으며 그들은 우리 기술진의 단순 보조 역할을 하는 임무였고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나이로 나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아서 더욱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와 사상과 이념과 대립의 적대 관계에 있는 다시 말해서 우리가 군사적 관점에서 적으로 규정짓는 그런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지금 나는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한 민족의 형제로 따뜻한 가슴으로 대할 것인가, 아니면 차가운 가슴으로 냉철하게 국가보안법을 머리에 되새기며 신고의 대상으로 그들을 대할 것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 이란 그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아니던가?

6.25란 우리 민족의 돌이킬 수 없는 참사 속에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분단의 아픔 속에 총과 칼을 맞대고 대치하고 있는 상대, 북한! 그 북한의 기술자와 지금 3m 안되는 거리에서 같이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과 눈빛이 마주칠 때면 나의 내면의 복잡한 심경을 포장하기 위해 얼굴에는 부자연스러운 미소지만 어느 사이 그들을 맞이하는 민첩합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 만나서인지 서로는 말이 없었다. 나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선뜻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것은 오랜 시간 분단의 벽과 커 오면서 학교에서 배워 온 북한에 대한 적이 아니면 동지라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의 산물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 내가 가장 처음 접한 보이지 않은 거대한 벽이 가로 놓여져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원망의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우리 식의 자만적인 사고방식과 반공에 사로잡힌 편협되고 일방적인 북한에 대한 교육이 지금도 "나는 공산당이 싢어요" 하는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의 글귀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게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일인 독제 체제의 유일 신격화를 내세워 민족의 아픔을 불모로 헐벗은 주민의 희생 속에 체제를 유지하는 공산당에 문제가 있는가?

나는 어디에 대고 뉘 잘못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로의 회귀밖에 되지 않은 것 같아 가만히 생각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같은 곳에서 단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단순히 그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 단순한 현상의 내면에 그 누구도 풀지 못하는 민족의 서글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나는 반통일론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내일이라도 곧 통일이 될것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진 급진적인 통일론자도 아니다. 그저 하찮은 기술하나 배워서 이것으로 아내와 어린 두 자식을 먹여 살리고 있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일 뿐이요, 보편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봉급쟁이 회사원일 뿐이다. 그런 내가 통일을 논하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나 자신을 훨씬 오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할 말은 하고 살아야 겠다. 이렇게 말하니까 "할 말은 하는 신문" 조0일보를 흉내내는 것 같기도 한지만......

근간에 와서 햇볕 정책의 퍼주기식 문제, 통일부 장관 거취 문제, 8.15축전 방북단 돌출행동문제등 굵직굵직한 북한과 연관된 일들이 시리즈로 꼬리를 물고 대서특필되고 우리 남한사회 전체를 혼란 속으로 몰아 넣어 급기야는 남남 갈등이라는 말까지 스스럼없이 나타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일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직접 체험한 북한 생활과 연장선상에서 생각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가슴이 터질 듯한 답답함을 감출 수가 없다. 남북문제를 너무 자기들 입맛에 맞추려고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잇따른 정책의 실패로 돌아선 민심을 붙잡으려고 하는 집권 민주당은 남북 문제밖에 이제는 기댈 때가 없는 것 같아서 구걸한다는 비판을 들으면서 까지 더욱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 같고, 눈만 뜨면 딴지 걸기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나라당은 마치 상대가 망가져야 내가 산다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대안 없이 고춧가루만 뿌려 대는 심보, 그리고 책임은 지지 않고 여당 행세를 하며 이쪽 저쪽 줄타기를 하며 권력의 단맛만을 즐기는 것 같은 자민련... 여기에 유난히 붉은 색칠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 조선일보,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일들이 터지자 물 만난 고기 마냥 휘젓고 다니고 있으며 또 여기에 가세한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결코 뒤지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민족의 문제, 남북문제를 자기의 입맛대로 재단하려고 하는 이들이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북한이 무슨 지상 최대의 낙원으로 착각하는 극좌 세력, 공산당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는 극우 세력, 이들이 남과 북의 보이지 않는 청옹성같은 이념의 벽을 허물지 못하게 떠받치고 있는 게 안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북문제는 순수하게 민족문제로 풀어나가야 한다. 여기에 집권욕이나, 대권욕, 그리고 추잡한  사적인 감정이 들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제는 평범한 우리 국민들이 저들을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그들과 함께 방관자로 활약한 평범한 우리 국민도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