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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6> 북한에서 생활(6)-부제 : 옥류관에서 만난 북한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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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체험담
등록일2016-03-21 14:43:24
작성자게시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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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6> 북한에서 생활(6)


부제 : 옥류관에서 만난 북한여성

 

<<이 글은 제가 2000년 5월 30일~6월 19일까지 20일 동안 북한에서 경수로 건설 사업중 비파괴검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체험한 것을 회상하면서 적은 글입니다.>>




북한 근로자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미지의 세계인 북한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 나가는 사이, 점심 후 오후의 시간은 훨씬 빠르게 지나갔으며 벌써 하루의 공식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 일행은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밤의 일정에 돌입했다. 그 밤의 일정이란? 우리를 포함한 이곳에 온 우리측 근로자들은 정해진 구역 내에서 여가 시간을 즐겨야 하는 고통(?)속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주잔을 주고 받으며 남한에 있는 처자식과 부모님 생각에 젖어야 하는 그런 시간이었다. 나 또한 그 외에는 별반 다를 게 없이 남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딱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이곳 주거 지역엔 기숙사를 기준으로 앞쪽에는 구내식당이 있고, 그 주위로 간식이나 라면, 맥주, 소주, 생필품 등 이곳에서 필요한 대부분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국내에서 들여와서 판매하는 구내매점과 비디오와 책을 대여해 주는 곳, 그리고 실내에서 탁구를 칠 수 있는 탁구장과, 그 옆칸에는 2칸으로 나눠진 곳에 DDR 노래방 기계가 설치되어 있어 누구나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환자의 간단한 수술은 이곳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는 병원과 약국 그리고 환전을 할 수 있는 외환은행 출장소가 이곳 주거지역 내에 설치되어 있으며, 주거지역 경계에는 평양 옥류관 분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북한에서 우리 근로자를 상대로 장사를 하는 곳으로 밤에는 술과 안주, 북한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우리 근로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저녁 시간때 식당에서 얻어 온 김치와 매점에서 사 온 소주와 냉동된 삼겹살을 중심에 놓고 숙소의 거실에 둘러앉아서 소주 파티를 시작하였다.

각기 다른 회사와 소속으로 이곳에 오게 된 우리는 그 사연을 풀어놓는 계기가 되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돌고 도는 소주잔 속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소주를 잘 마시지 못하지만 분위기에 휩싸여 여러 잔을 마셨는데도 술기운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모두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고 나와 같이 온 사람과 함께 이곳 현장 소장의 안내로 우리 세명은 저쪽편 오색 불빛이 반짝이는 북한 술집인 옥류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깜박거리는 불빛 속으로 들어가자 이곳에는 우리측 근로자들이 2~3명씩 팀이 되어 테이블마다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부는 나즈막한 칸막이와 테이블이 20여 개 정도 있고, 그 옆으로는 카운터를 겸해서 손님과 마주보게 하는 길쭉한 테이블을 중심으로 등받이 없는 높은 의자가 10여 개 놓여져 있었다. 우리는 북한 여성을 마주보는 위치에 높은 의자에 앉았다. 이곳은 북한 여성 10여명 정도가 근무를 하고 있었고 우리측 근로자들의 술이나 안주 심부름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테이블 위 탁자에 놓여있는 20인치 정도 돼보이는 컬러TV 에선 북한의 흥겨운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모두들 자기의 말을 토해 내느라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스며들어 TV에 집중한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우린 여기에서 불고기 안주와 술 한병을 시켰다. 술은 35도가 넘은 듯 했다. 여기에서 근무하는 북한 여성들은 술과 안주 등 필요한 것을 주문을 받고 갖다 주며 가끔씩 테이블을 돌며 술을 따라 주며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며 우리의 기분을 맞추어 주었다. 그렇다고 손을 잡거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며 그들만의 명확한 선을 그어 놓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간단한 농담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정말 벽이 없는 그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도, 그들도 이제는 더 이상의 가식적인 대화를 벗어나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며 그러는 중에 가끔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때도 있었다.

지금의 시간만큼은 형제자매가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살아왔던 얘기를 주고받는 그런 자리임에 틀림없었다. 고운 한복 차림의 엷은 화장을 한 어여쁘고 순박한 얼굴, 그녀의 모습 어느 곳에서도 붉은 깃발과, 북한 공산당, 사회주의 등 이러한 용어는 느낄 수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술잔에 기울어진 포용심에 나 혼자 그들을 감싸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들은 우리측 근로자와의 대화 내용이나 소속 등 사소한 것까지 하나 하나를 기록해서 당에 보고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러한 그녀들의 역할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그들의 현실과 남과 북이 대치하고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사소한 감정보다 앞에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은 우리측 근로자를 두 번 만나면 반드시 얼굴과 이름과 소속을 기억한다고 한다. 고운 한복의 옷고름 뒤에 감춰진 그들의 속마음을 술몇잔 마시고 읽어낼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생각은 처음부터 어리석은 것이었다. 아니 그들은 나의 그 어리석음을 이곳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니 허망하다는 생각이 조여오는 것 같다. 그녀와의 진실된 대화와 그 진지함 모두가 사전에 계산된 대본 속에 진행된 연출이라고 생각하니 무릇 소름이 끼치기까지 한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여쁜 얼굴 위로 엷은 화장은 더 이상의 화장이 아니라 속내음을 포장하기 위한 위장술의 하나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씁쓸한 마음에 독한 술을 여거푸 2잔 들이마시니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양파 껍집을 한 꺼풀, 두 꺼풀 계속 벗겨도 속은 보이지 않고 계속 벗겨지는 것처럼 정말 종잡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북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산 가족 문제와 남북 대화, 그리고 남북경협, 이러한 문제로 남과 북은 많은 대화와, 선언도 하고 협약을 맺었었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 보이나 근본적인 북한의 태도 변화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우리 남한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와 경제적인 부담을 지면서까지 그들의 변화를 기다려 왔는가! 아니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하는가! 지구상에 딱 하나 남은 둘로 나뉜 민족! 바로 우리가 아닌가!

나는 이 술잔의 풍요속에서 남과 북이란 이 무거운 주제를 내 머릿속에 내려놓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야만 이 밤을 이리 저리 뒤척이지 않고 깊이 잠들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