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길세상보기

07년 8월 여름휴가 중....“무위사 맞배지붕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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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여행기
등록일2016-03-21 10:13:34
작성자게시판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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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8월 여름휴가 중....“무위사 맞배지붕의 아름다움”

 

나는 휴가 때면 언제나 고향을 찾는다, 과거에 이곳저곳 많이도 다녔기에 이제는 그냥 고향을 찾는 것만으로도 편하고 좋다. 고향은 전남 강진에서 20분쯤 더 들어가면 깊숙한 산골이다. 고향집에서 국립공원 월출산 입구(월남)까지는 승용차로 10분 거리이며, 무위사라는 절은 15분 거리에 있다. 특별이 이번에는 5~6번도 왔던 곳인 무위사에 아주 꼼꼼히 유홍준님의 “나의문화답사기”에서 그토록 극찬했던 부분들을 확인하고 감상하고자 다시 찾았다. 이곳 무위사를 감상하기 위해 아래에 유홍준의 “나의문화답사기” 글 중 무위사 관련 글을 그대로 올려 적어 놓았다.

 

2007. 08. 12

 김 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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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남 강진군편 ‘무위사 극락보전의 아름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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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답사 일번지의 첫 기착지로 나는 항상 무위사를 택한다. 바삐 움직이는  도회적 삶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무위사에 당도하는 순간 세상에는 이처럼 소담하고, 한적하고, 검소하고,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곤 한다. 더욱이 그 소박함은 가난의 미가 아니라 단아한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월남리(월출산 입구)에서 강진 쪽으로 불과 3km, 길가에는 국보 제 13호 라는 큰 글씨와 이발소 그림풍의 관음보살상 입간판이 오른쪽 화살표로 해놓고 있다. 여기서 월출산 쪽으로 3km.

 

........중략..................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5분 만에 무위사 천왕문 앞에 당도해 버렸다. 그것은 편리가 아니라 경박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천왕문을 지나면 곧바로 경내, 오른쪽으로는 허름한 슬래브 집 요사 채가 궁색해 보이지만 정면에 보이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집이 그렇게 아담하고 의젓하게 보일 수가 없다. 조선시대 성종 7년(1476년) 무렵에 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목조건축의 하나이다.

 

세상의 국보 중에는 국보답지 못한 것이 적지 않지만 무위사 극락보전은 국보 제 13호의 영예에 유감없이 보답하고 있다.

 

예산 수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 같은 고려시대 맞배지붕 주심포집의 엄숙함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종묘나 명륜당 대성전에서 보이는 단아함이 여기 그대로 살아있다. 거기에다 권위 보다 더 친근함을 쥐 위함인지 용마루의 직선을  슬쩍 공글린 것이 더더욱 매력적이다. 치장이 드러나지 않은 문살에도 조선 초가 아니면 볼 수 없는 단정함이 살아 있다.

 

내가 어떤 미사어구를 동원한다 해도 이 한적한 절집의 분위기에 척 어울리는 저 소담하고 단정한 극락보전의 아름다움을 반도 전하지 못할 것 같다. 언제 어느 때 보아도 저 극락보전은 나에게 “너도 인생을 가꾸려면 내 모습처럼 되어보렴” 하는 조용한 충언을 들려주는 것 같다.

 

그러나 나의 학생은 극락보전의 낮은 목소리를 못 듣는 것 같았다. 본래 단순한 미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나는 학생들을  법당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다.

 

극락보전 안에는 성종 7년(1476)에 그림을 끝맺었다는 화기가 적혀 있는 아미타 삼존벽화와 수월관음도가 원화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것은 두루마리 탱화가 아닌 토벽의 붙박이 벽화로 그려진 가장 오래된 후불벽화로 화려하고 셈세. 했던 고려불화의 전통을 유감없이 이어 받은 명작 중의 명작이다. 무위사 벽화 이래로 고려불화의 전통은 맥을 잃게 되고 우리가 대부분의 절집에서 볼 수 있는 후불탱화들은 모두 임란이후 18, 19세기의 것이니 그 기법과 분위기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무위사 벽화는 역시 조선시대 불화답게 고려불화와 엄격한 상하 2단 구도를 포기하고 화면을 꽉 채우는 원형구도로 바뀌었다. 고려불화라면 협시보살로 설정한 관음과 지장보살을 아미타여래 무릎 아래로 그려 위계질서를 강조하면서 부처의 권위를 극대화 시켰겠지만, 무위사 벽화에서는 협시보살이 양옆에 서고 그 위로는 6인의 나한사이 구름 속에 싸이면서 부처님을 중심으로 행복한 친화관게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불화라도 상하2단 구도와 원형 구도는 이처럼 신앙형태상의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니 미술이 그 시대를 드러내는 꼭 내용만이 아니라 이처럼 형식에서도 구해진다.

 

…….중략...............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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